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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 반향] 변함없는 국악 VS 변신하는 국악

 

우리들은 ‘한국어’를 사용합니다. ‘한국음식’을 즐겨 먹고,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한적한 ‘한옥’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명승지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즐거운 추억을 쌓기도 합니다. 이처럼 먹고, 살고, 입는 것과 달리 듣는 것, 즉 ‘한국음악’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루하다’ ‘청승맞다’ ‘재미없다’ 등의 이유로 말이죠. 이러한 대중의 불만을 국악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음악은 오늘날 많은 변화를 추구하며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송년을 맞아 특별한 두 개의 국악공연을 소개해드립니다. 600년 동안 전승되어온 <종묘제례악>을 선보이는 국립국악원 정악단(12월 20~25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의 무대가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경기도립국악단이 선보이는 창작공연 <반향> 공연(12월 6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입니다. 

변함없는 국악: 종묘제례악 

조선의 역대 국왕에게 바치는 제사의식을 ‘종묘제례’라 하고, 이때에 사용하는 음악을 ‘종묘제례악’이라 합니다. 종묘제례가 오르는 곳은 ‘종묘’입니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이곳은 조선조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입니다.

예로부터 한국에는 종묘제례 외에 다양한 제례의식이 존재했습니다. 하늘에 바치는 ‘원구제’, 땅의 신에게 바치는 ‘사직제’, 비를 구하는 ‘기우제’, 농사와 양잠의 성공을 바라는 ‘선농제’와 ‘선잠제’ 등입니다. 이러한 제례의식을 통해 선조들은 겸양과 순응의 미덕을 갖추었고, 우주·자연·인간이 공존공생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중 종묘제례는 이러한 사상이 잘 담긴 문화입니다. 

종묘제례악이 만들어진 것은 15세기 중엽으로,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입니다. 물론 하나의 틀어짐 없이 올곧게 유지되어온 것만은 아닙니다. 조선의 왕들은 문물을 새롭게 정비해야 할 때마다 이 음악을 새로 다듬었기 때문입니다. 왕들이 직접 관장한 음악이었다고 하니 그 중요성이 좀 느껴지시나요? 세종은 그 중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조선의 왕, 종묘제례악의 작·편곡자가 되다

"우리는 ‘향악(鄕樂)’을 익혀왔는데 종묘에서 ‘당악(唐樂)’을 연주하고, 초헌·아헌을 한 다음 종헌에 이르러 향악을 연주하니 조상들이 평소에 듣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떠한가”
- 1425년(세종 7) 세종 

여기서 ‘향악’은 ‘조선의 음악’이고, ‘당악’은 외래음악 즉, 중국의 음악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세종의 이 말인 즉 ‘우리음악’인 향악을 ‘외래음악’보다 더 발전시키고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문화의식에서 나온 어명입니다.

1460년 세조는 “세종이 제정한 음악과 춤이 쓰이지 않고 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라고 물으며 종묘제례악의 전승에 소홀히 한 관리들을 꾸짖습니다. 이처럼 조선의 왕들이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신경 쓴 이유는 조상과 그 은덕을 중요하게 생각한 유교 국가인 조선의 기틀을 잡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 제사이자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지켜 온 6백 년의 시간

국립국악원 정악단(예술감독 이영)은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궁중음악과 제례음악을 전문적으로 전승하고 있는 국립예술단체입니다. 

종묘제례악은 죽은 자를 위한 제사음악이지만 악기연주-노래-무용이 함께 하는 종합예술입니다. 2015년 한국과 프랑스 상호교류의해 개막작으로 파리 국립샤이오극장에서 개막공연을 장식하기도 했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성공기원공연을 위해 오르기도 했습니다. 궁중악사 의상을 입은 악사들이 1시간이 넘도록 악보도 보지 않고 연주하는 광경에 많은 이들은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왜 기분 들뜬 송년에 제례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큰일을 앞둔 선조들이 조상에게 안녕과 수호를 바라는 ‘신고식’을 치루었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이 음악과 감상의 가치를 이해하게 됩니다. 

​변신하는 국악: 국악관현악

종묘제레악이 600년 동안 ‘전승’된 음악이라면, 국악관현악과 그 음악은 20세기 중반에 ‘창작’된 것들입니다. 서양의 관현악단(오케스트라)은 현악·관악·타악기가 모여 지휘자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연주 형식입니다. 국악관현악단은 1960년대 이러한 서양식 관현악단의 모습을 토대로 만든 것입니다. 지휘자를 기준으로 현악기→관악기→타악기 순으로 배치되는데, 국악관현악단도 이와 마찬가지로 현악기(가야금·거문고·해금·아쟁 등)→관악기(대금·소금·피리·태평소 등)→타악(장구·북·꽹과리 등) 순으로 배치됩니다. 

이러한 국악관현악단이 태어나면서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작품과 지휘자였습니다. 많은 작곡가들이 이를 위해 창작과 지휘를 맡았는데, 그중 원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입니다. 게다가 ‘국악관현악계의 반항아’라는 평도 받고 있을 정도로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던지며 나아온 음악가입니다. 

다양한 소재, 현대사회가 외면하는 죽음부터 평안까지 

이번에 선보이는 공연 ‘반향’은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의 취임한 원일의 첫 번째 무대입니다. 늘 그렇듯이 그의 시작은 남다릅니다. 어떤 곡들이 오를까요? 

관현악 <천장>과 진혼곡 <Bardo-k>는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곡으로, 삶과 공존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곡입니다. 

<천장>은 티베트의 죽음의식인 ‘천장(天葬)’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창가객 강권순과 용인시립합창단이 함께 하는 <Bardo-K>는 죽은 이가 저승으로 천도되기까지 머무는 ‘살고도 죽은, 죽고도 산’ 상태를 이르는 티베트어인 ‘바르도(Bardo)’의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특히 <Bardo-K>는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곡입니다.

​국악관현악은 서양에서 태어난 음악들을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합니다. 경기도립국악단은 특별하게 1952년 존 케이지가 발표한 <4분 33초>를 연주하는데요, 사실 ‘연주하지 않는 무행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침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할 예정입니다. 

또한 명상적인 분위기의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도 연주합니다. 이 곡은 바이올린·피아노를 위한 곡인데요, 이를 아쟁·가야금이 함께 하여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음악이 한국의 소리로 어떻게 태어날지, 그 변화를 기대하게 합니다. 

경기도립국악단이 선사할 ‘자연’과 ‘명상’의 시공간 

이번 공연의 특별한 시간은 무대 위에 ‘관객참여석’이 설치된다는 점입니다. ‘현악 영산회상’의 일부인 ‘상령산’은 굉장히 느린 속도의 국악곡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의 대명사가 된 곡인데, 원일과 경기도립국악단은 역발상을 통해 그 속에서 ‘여유로움’과 ‘명상’의 분위기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연주자들이 이 곡을 느리게 연주하는 가운데로 관객들이 천천히 걸으며 음악을 곱씹게 됩니다. 

유희경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한 <구름은 구름처럼 구름같이 구름이 되어서>는 대금과 전자음향이 일구는 묘한 분위기와 백색소음이 함께 하는 작품입니다. 원일의 <소리 시나위Ⅰ>은 국악기의 소재인 쇠, 돌, 실(명주), 대나무, 박, 흙, 가죽, 나무 등 자연적 소재에 담긴 소리와 상징적인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엮은 작품입니다. 

​두 개의 국악공연과 함께하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는 이처럼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존재들을 되새기는 자리입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종묘제례악>을 통해 나의 안녕을 지켜준 존재에게, 경기도립국악단의 <반향>을 통해 잊어서는 안 되는 이들에게 소리의 신호를 보내고 그로부터 반향(反響)되는 소리를 통해 서로의 소통을 이어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글 ㅣ 송현민 (음악 평론가) 

* KOPIS 공식 블로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