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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 왜 송년발레는 이걸로 통일일까?

크리스마스 트리나 캐롤, 산타 할아버지만큼이나 연말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크리스마스 아이템이 바로 '호두까기 인형'이지요. 이 인형은 본래 15세기부터 유럽에서 제작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호두처럼 껍데기가 단단한 음식을 까는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멋지게 제작되어 꼭 호두를 까지 않더라도 방 한 켠에 어엿하게 놓아두는 장식품으로도 선호되었다지요. 이 인형은 서유럽에서는 성탄절 선물로 많이 주고받았다고 하는데요, 독일에는 이 인형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들까지 있었다고 해요. 카이저 수염을 기르고 제복을 입은 군인의 모습을 한 인형이 대세로 기울면서 점차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물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정작 본래 목적인 호두를 깔 때 사용하는 경우는 오히려 점점 드물어졌지요.


1816년 E.T.A. 호프만은 바로 이 호두까기 인형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친구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요량으로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이라는 동화를 지었습니다. 이 동화는 프랑스 작가 뒤마가 1844년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유럽에 널리 퍼졌고, 어느덧 러시아에까지 알려졌지요. 러시아 마린스키 수석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는 이 이야기를 발레로 만들고자 개작해서 대본을 만들었고, 여기에 차이콥스키가 음악을 작곡했으니, 그 작품이 바로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입니다.

독일 어느 마을의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실버하우스 씨 저택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참 열리고 있죠. 클라라와 프리츠 남매는 그들의 대부이자 마법사인 드로셀마이어에게서 선물을 받습니다. 클라라에게 주어진 것은 못생긴 호두까기 인형이었는데요, 그나마도 프리츠가 장난을 쳐서 고장이 나 버리지요. 드로셀마이어는 인형을 고쳐주고,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호두까기 인형을 안은 채 잠든 클라라는 꿈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생쥐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그 순간 호두까기 인형이 등장해 다른 장난감 병정 인형들과 함께 생쥐를 물리치지요. 그 순간 마법이 풀리면서 호두까기 인형은 왕자가 되어 클라라와 함께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납니다.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이면 전 세계 모든 극장을 가득 채우지요. 어지간히 이름난 발레단이라면 저마다 고유의 프로덕션을 가지고 있는 게 보통입니다. 매년 똑같은 공연을 무대에 올려도 관객들의 물결은 끊이지 않습니다. 공연계에는 ‘1월부터 11월까지 적자 공연을 하다가 12월 한 달 동안 <호두까기 인형>으로 만회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지요. 미국 주요 발레단 매출 중 45-50퍼센트가 <호두까기 인형>에서 비롯된다는 통계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발레극이 처음부터 그렇게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18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 초연무대가 올라갔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눈꽃 왈츠를 제외하고는 평단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죠. 안무는 세련되지 못했고 대선들의 역량도 떨어졌으며 대본조차 조잡하다는 악평에 시달렸습니다. 여기에는 안무를 맡았던 프티파가 초연 전 병에 걸리면서 조수인 이바노프에게 제작을 대신 맡긴 탓이 크다고들 합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너무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모스크바와 키로프에 새로운 안무로 이 작품에 다시 도전했고, 안무가 개선된 만큼 관객들의 호응도도 올라갔습니다. 
이 작품이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해외에 처음 소개된 것은 초연 후 40년이 지난 1934년 런던에서의 일이었어요. 이어서 1944년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미국 초연을 계기로 크리스마스 상설 공연으로 정착하게 되었지요. 당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막 창단된 신생단체로 늘 예산부족에 허덕이는 빈곤한 단체였습니다. 무대 의상을 만들 돈이 없어서 폐관한 극장의 커튼을 가져다 잘라서 만들 정도였죠. 하지만 <호두까기 인형>이 성공하며 엄청난 수익을 남겼고 덕분에 발레단도 재정 안정과 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의 은혜를 입었다고나 할까요. 이를 지켜본 뉴욕 시티 발레단(1954, 조지 발란신 안무), 영국 로열 발레단(1963년, 누레예프 안무) 등 다른 컴퍼니들도 새로운 안무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호두까기 인형>을 제작해 크리스마스마다 상설 공연으로 올렸습니다. 원조 초연단체인 마린스키 발레단까지도 1954년 프티파 버전을 수정 부활시켰지요. 이것이 오늘날 연말마다 호두까기 인형 붐이 일어나게 된 배경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1970년대 한국의 유일한 발레단이었던 국립 발레단이 <호두까기 인형>을 크리스마스가 아닌 어린이날에 상연했다고 해요.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일까요? 이 발레가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옮겨온 것은 1986년부터였는데요, 이때부터 신생 단체였던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 발레단이 늘 연말이면 <호두까기 인형>으로 경쟁무대를 펼치고 있지요. ​국립발레단은 볼쇼이 발레단의 전설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프리파 원작을 재해석한 버전을 공연합니다. 스펙터클한 군무와 스타일리시한 춤동작, 화려한 무대 디자인이 일품이죠. 

반면 유니버설 발레단 버전은 구소련 안무가 바실리 바이노넨이 키로프 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1934년 버전이에요. 국립발레단 작품과 비교할 때 마임과 같은 연극적 요소가 많아서 아기자기한 편이지요. 또한 여주인공 클라라 역을 1막에서는 어린이가 맡는 것이 다릅니다. 한편 최근 몇 년간은 신생 발레단이 와이즈발레단이 선보이는 창작버전이 양 발레단의 틈새에 가세하여 ‘호두까기 인형 삼국시대’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발레에 비보잉, 탭댄스 등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버전인데요, 생쥐들이 선보이는 비보잉이 특히 인기가 높습니다.


글 ㅣ 노승림(음악평론가)

* KOPIS 공식 블로그에 실린 글 입니다.